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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조조 래빗》 - 우리가 믿은 아이, 우리가 만든 아이

by aurora33님의 블로그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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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영화[케빈에 대하여] 공식 스틸컷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조조 래빗》, 아이는 본래 그런 존재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걸까? 이 글에서는 두 영화 속 ‘아이’와 ‘양육’이 얽힌 감정의 흐름을 비교합니다.

《케빈에 대하여》와 《조조 래빗》, 아이를 바라보는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는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다. 말을 하지 않고, 웃지 않고, 다정하지 않았다. 에바는 아이를 향한 감정과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낀다. 《조조 래빗》에서 조조는 어머니에게 사랑받는 아이였지만, 그는 히틀러를 상상의 친구로 삼고, 유대인을 적이라 여기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조조를 단속하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말로 품는다. 하지만 조조는 세상의 감정과 어른의 시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순수함일까, 오염일까?

아이는 어른이 만든 세계 안에서 자란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조조 래빗》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둘은 “아이를 이해하려는 어른의 시선”이라는 강력한 공통점을 가진다. 한 아이는 파괴적이었고, 다른 아이는 극단적인 신념을 순수함이라 믿었다. 케빈은 부모의 감정이 결여된 틈을 뚫고 스스로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행동한다. 그는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도발하고, 망가뜨린다. 그 안에서 아이가 성장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병들며 자라난다. 조조는 전쟁이라는 세계 속에서 히틀러를 믿고, 국가를 따르며, 극단적인 신념을 장난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나며 자신이 믿은 세계가 거짓이었다는 걸 알아간다. 그 변화는 어머니의 방식이 옳았다는 뒤늦은 확인이기도 하다.

 

어린 소년 조조가 군복을 입고 긴장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는 장면
이미지 출처:영화[조조 래빗] 공식 스틸컷

우리는 아이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케빈에 대하여 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왜 그랬니?” 그리고 케빈은 말한다. “이젠 잘 모르겠어요.” 그 답은 끔찍하면서도 슬프다. 그 누구도 진짜 이유를 모른 채, 감정만 남는다. 《조조 래빗》에서 조조는 모든 것을 잃은 후 엘사와 함께 춤을 춘다. 어머니는 죽었고, 세계는 무너졌지만 그 안에서 처음으로 진짜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은 어머니가 남긴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조조를 감쌌다.《케빈에 대하여》와 《조조 래빗》은 어른이 만든 세계, 감정의 방식, 신념의 그림자 속에서 자란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무너졌고, 누군가는 사랑으로 그 틈을 비집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믿은 아이는 누구였을까?” “그 아이는 결국, 우리가 만든 감정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감독 제작 의도 

《케빈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는 “악”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을 품은 아이와, 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감정 안에서 태어나는 두려움, 회의, 죄책감을 조용히 묻는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의 본성이 전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와 양육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영화는 엄마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지만, 결국 관객은 "나는 어떤 감정으로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조조 래빗》

《조조 래빗》은 어리지만 세상에 휘둘리는 한 아이가 자신의 믿음과 감정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을 유머와 아이러니로 풀어낸다. 감독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배경 속에서도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현실이자 삶의 기준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결국 사랑, 용기, 자아의 재발견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믿게 했는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아이의 본성일까, 누군가의 사랑일까?

명대사

《케빈에 대하여》

“Why?” “I used to think I knew. Now, I’m not so sure.” "왜 그랬니?"
"예전엔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모든 감정을 무너뜨리는 이 대사는, 모성과 인간성의 실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조조 래빗》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 Just keep going. No feeling is final.” “모든 걸 겪어, 아름다움이든 공포든. 계속 살아가. 모든 감정은 지나가.”  조조가 새로운 감정과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문장은 조용히 그의 성장과 회복을 감싼다.

감상평 

사랑하고 싶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

《케빈에 대하여》는 사랑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마주한 엄마의 끝없는 혼란과 무력함을,《조조 래빗》은 증오와 신념 속에서도 어떤 사랑은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걸 보여줍니다. 두 영화 모두, 어른이 만든 감정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믿었을까요? 아니면, 아이가 믿게 만들었던 걸까요? 한 아이는 폭력으로, 다른 아이는 춤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결국 두 영화 모두 “사랑이 있다면, 희망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가장 날카로운 방식으로 남깁니다.

OST 추천

《케빈에 대하여》

Lonnie Holley – “The End of the World”
불안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영화 전반의 긴장과 감정적 고립을 표현합니다. Jonny Greenwood – “Treefingers” 
레디오헤드의 실험적인 앰비언트 사운드로, 케빈의 심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분위기입니다.

《조조 래빗》

David Bowie – “Heroes” (독일어 버전)
엔딩 크레디트에 사용된 곡. 전쟁 이후의 삶과 조조의 성장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 Tom Waits – “I Don’t Wanna Grow Up”
조조의 동화 같은 시선과 어른들의 세계 사이에서의 충돌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외부 링크

《케빈에 대하여》

《조조 래빗》

감정에 관한 또 다른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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