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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시인의 사랑》 vs 《클로즈》 - 침묵의 감정

by aurora33님의 블로그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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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판을 가르며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두 소년,
이미지 출처:영화[클로즈] 공식 스틸컷

 

 영화《시인의 사랑》과 《클로즈》는 침묵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감성 영화입니다. 감정은 언제나 말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두 작품은 말하지 못한 채 멀어진 마음의 결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영화《시인의 사랑》과 《클로즈》 침묵의 감정 – 말하지 못한 마음이 만든 거리

《시인의 사랑》의 윤환은 문학이라는 감정의 세계에 살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감정을 현실로 꺼내는 데에는 무척 서툴다. 후배 시인 세윤에게 끌리면서도, 그 감정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는 도리어 세윤을 멀리한다. 정서적으로 위로받고 싶었던 존재가, 어느새 감정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감정은 발설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그 감정을 ‘밀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감정을 부정하려는 태도 속에는 고독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클로즈》의 주인공 레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친구 레미와 거의 형제처럼 지낸다. 하지만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사회적 시선과 내면의 혼란 속에서, 그는 레미와의 관계를 부정하게 된다. 감정의 시작은 따뜻한 친밀감이었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 감정을 다른 이름으로 해석하게 만들고, 결국 레오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두 영화는 감정이 커지는 순간보다, 감정을 인지하고 나서 벌어지는 ‘거리두기’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인물은 스스로 감정을 파괴하고 관계를 잃게 된다.

말하지 않았기에, 감정은 더 무겁게 남는다

《시인의 사랑》은 끝까지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고백도, 갈등도 모두 은유 속에 묻혀 있다. 시인의 언어는 풍부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너무나 무력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무책임하게 침묵을 택하고, 관계를 끊은 채 세윤을 잃는다. 관객은 ‘그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끝내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그 감정은 존재했고, 그리고 말하지 않았기에 더 깊은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다. 《클로즈》는 감정의 무게를 침묵과 후회로 표현한다. 레오는 레미의 자살 이후에도 끝내 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그저 달리거나, 울거나, 혼자 멈춰 서 있을 뿐이다. 그의 몸짓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레오의 죄책감은 단순한 잘못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외면한 자신 때문이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말하지 못한 감정이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고, 깊은 후회와 자책을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을 말하지 않았기에, 그 감정은 죽지 않고 가슴속에 고여 남는다.

시 낭독 모임에서 혼자 서 있는 남자와 그를 둘러싼 어색한 침묵의 장면.
이미지 출처: 영화[시인의 사랑] 공식 스틸컷

결국 감정은, 남은 자의 몫이 된다

《시인의 사랑》의 마지막 장면은 윤환이 다시 세윤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감정은 흘러갔지만, 잊히지 않았다. 그는 그 감정을 시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삶 속에서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감정은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남는다.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그리고 그것이 그를 더 외롭게 만든다. 《클로즈》는 레오가 레미의 엄마에게 다가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일부라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은 위로다. 레미는 돌아올 수 없고, 감정은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침묵은 감정을 보호하지 못했고, 오히려 감정을 잃게 했다. 두 영화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그 여운이 어떻게 ‘남은 사람’에게 남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한다. 사랑은 표현되어야만 완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은 늘 아쉬움과 함께 마음에 남게 된다.

《시인의 사랑》과 《클로즈》는 완전히 다른 배경과 캐릭터를 가졌지만, 감정을 감춘 사람의 고독과, 표현하지 않은 사랑이 남긴 공허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말하지 않았기에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감정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 조용히 남는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더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도 그 감정의 잔상을 껴안고, 조용히 그들을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인 감상 – 그때 말했더라면, 지금은 달랐을까

영화 《시인의 사랑》과 《클로즈》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연령의 두 인물을 그리지만, 닮은 결을 가진다. 이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선, 거리감, 침묵으로 감정을 보여준다. 

《시인의 사랑》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을 품고도 내보이지 못한 채, 시로만 말하는 한 사람의 고독은 묵직한 슬픔으로 남는다.《클로즈》는 관계를 멀리한 후 남겨진 아이가 짊어진 감정의 무게를 조용히 그린다. 두 영화 모두, 감정을 감추는 것이 반드시 상처를 막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가끔은 그저 한마디 “괜찮아”라고 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명대사

《시인의 사랑》

“나도 그때는 나를 몰랐어요.” 감정을 외면했던 사람의 뒤늦은 고백이자,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윤환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말.

《클로즈》

“난 네가 그리워.” (Je te manque.)  레오가 끝내하지 못했던 말. 이 말 하나로 모든 후회, 죄책감, 감정의 잔상이 밀려온다.


OST 추천

 시인의 사랑 

정재일 – 시인의 사랑 메인 테마곡

피아노 중심의 잔잔한 연주로,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인물의 내면을 잘 표현함
영화 전체를 감싸는 침묵과 절제를 고요하게 전달하는 분위기

클로즈 (Close, 2022) 

Valentin Hadjadj – Close OST Main Theme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클래식풍 사운드
감정의 미세한 떨림, 고독, 후회, 그리고 침묵의 무게까지 섬세하게 표현

 

감정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이야기

[영화] - 콜드 워 vs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침묵의 감정, 시선의 사랑, 이루지 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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