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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패왕별희》 vs 《아비정전》, 말하지 못한 사랑과 정체성의 상처

by aurora33님의 블로그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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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을 하며 거울을 응시하는 남자와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
이미지 출처:영화[패왕별희] 공식 스틸컷

 

영화《패왕별희》와 《아비정전》, 왜 그들은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정체성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을까?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감정의 억압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살펴본다.

영화 《패왕별희》와 《아비정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는가

《패왕별희》의 청디는 어릴 적부터 강제로 경극 속 여성 역할을 연기하며 자라난다. 그는 자신을 ‘우희’로 동일시하며, 현실 속 사랑과 극 중의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정은 장풍이에게 향하지만,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경극 속 사랑에 갇힌 채, 현실의 사랑을 끝내 붙잡지 못한다. 《아비정전》의 유디 역시 어릴 적부터 버림받은 인물이다. 그는 겉으론 매력적이고 자유롭지만, 관계 속에서 감정을 끝내 붙잡지 못한다. 소여사, 미미, 루루 모두 그에게 진심을 내보이지만, 그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줄 모른다. 사랑이 무너지기 전, 그는 이미 자신을 떠나버린 아이였기 때문이다.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고독의 뿌리

영화 《패왕별희》와 《아비정전》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공간, 다른 서사를 가진 영화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을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체성을 온전히 껴안지 못한 인물들의 비극이라는 정서에서 마주친다. 두 영화 모두 장국영이라는 배우의 눈빛을 통해 무너지는 감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 의 침묵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청디는 무대 위에선 아름답고 완벽한 ‘우희’지만, 무대 밖에선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여자로 길러진 남자, 남자이지만 여자의 역할만 허락된 존재. 그의 정체성은 찢겨 있고, 그 찢김은 결국 사랑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만든다. 유디는 스스로를 "나는 한 번도 태어나본 적 없는 사람"이라 말한다. 자신의 시작을 부정한 채 살아가는 그는, 관계 속에서조차 늘 일방적으로 떠나는 역할을 맡는다. 누군가를 잡는 대신, 늘 도망치고, 사라진다. 그의 정체성은 태어남 자체를 상처로 기억하는 인물이다.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며 고독에 잠긴 주인공
이미지 출처:영화[아비정전] 공식 스틸컷

말하지 않았기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 감정

청디는 장풍이 결혼하는 날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장풍이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건네는 말속에서, ‘연기된 사랑’을 진짜로 믿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현실이 아니었고, 청디는 극 속 감정에 갇힌 채 스스로를 파괴해 간다. 그의 마지막은 ‘우희’로서의 퇴장이다. 그는 결국, 사랑을 표현하지 않은 채, 사랑 속에서 무너진다. 유디는 마지막 총을 맞기 전까지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고백하지 않는다. 그는 미미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 채 떠난다. 그리고 “1분의 연인”을 기억하며, 그 감정 하나만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사라진다. 사랑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패왕별희》와 《아비정전》은 모두 사랑이 무너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무너짐은 격렬한 충돌이 아니라, 조용히 무너져가는 자아와 감정의 붕괴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상대도 품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비극은 사랑을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말할 수 없게 된 자신을 버린 결과다. 그래서 이 두 영화는 가장 슬픈 사랑은, 말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것을 고요하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

《패왕별희》 – 첸 카이거 감독

첸 카이거 감독은 《패왕별희》를 통해 한 인물의 예술과 사랑, 정체성이 하나로 얽힌 삶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무대 위 역할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때, 사람이 어떤 감정적 혼란을 겪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품은 단지 역사적 격변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어디까지가 ‘자기 자신’이고, 어디부터가 ‘연기’인지조차 모호해지는 인물의 내면을 조명한다. 감독은 사랑과 상처, 그리고 정체성의 붕괴가 뒤섞인 감정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아비정전》 – 왕가위 감독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에서 버림받은 과거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사랑을 갈구하고, 또 피하려 하는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대사를 아끼고, 시선과 정적인 공간, 시간의 여백으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냈다. 특히 주인공 아비는 누군가를 밀어내면서도 끊임없이 연결되길 바라는, 모순된 감정의 덩어리로 그려진다. 왕가위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 말로 표현되지 않을 때, 감정은 어떻게 표류하는가를 조용히 묻고 있다.

명대사

《패왕별희》

"나는 정말 우희였어."→ 청디가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잃은 채, 사랑과 정체성을 혼동한 인생을 고백하는 장면. 그 말엔 슬픔과 무너짐, 그리고 끝내 자신을 믿고 싶었던 처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요.

《아비정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난 혼자였어."→ 유디는 스스로 태어났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감정에 갇혀 살아가요. 사랑조차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이자, 감정의 뿌리를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개인적인 감상평 – 말하지 못한 사랑은 끝내 무너진다

청디와 유디. 그들은 사랑을 꿈꿨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덩치는 무대 위의 사랑을 믿었고, 유디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거리를 뒀다. 말하지 않은 사랑,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결국 고통으로 변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누구보다 사랑을 원했지만, 끝내 그 사랑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이 두 영화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다. 정체성, 자아, 감정의 흐름을 통해
“사랑이란 감정조차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슬픈 진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OST 추천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Main Theme – Zhao Jiping

경극 악기와 서양 클래식이 결합된 곡으로, 청디의 파괴된 감정과 ‘우희’의 절절한 슬픔이 담겨 있어요.

《아비정전》

Always in My Heart – Los Indios Tabajaras

유디와 미미의 만남, 그들의 조용한 거리감을 대표하는 곡. 마치 바람처럼 스쳐가는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죠.
Perfidia – Xavier Cugat

유디의 느릿한 걸음,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그가 사라진 후 남는 감정.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함축하는 트랙입니다.

 

외부 링크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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