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이히만 쇼》와 《더 액트 오브 킬링》은 기억하는 감정을 통해, 역사 속 잔혹함을 마주하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가해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영화《아이히만 쇼》와 《더 액트 오브 킬링》 기억하는 감정 – 가해자의 얼굴을 기록하는 이유
《아이히만 쇼》의 중심인물은 아이히만이 아니다. 그를 기록하려는 제작자들, 특히 프로듀서 밀턴 프루헴과 감독 레오 허먼이다. 그들은 질문한다.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믿지 않는’ 이유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단순한 보도를 넘어서, '보는 감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기록을 원한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쉽지 않다. 카메라 앵글 하나에도 의견이 갈리고,“정말 이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 윤리적인가?”라는 고민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끝내 그들은 감정을 꺼내기 위해서라도 ‘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신념은 세계를 바꾼다.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기록에서 감정이 실린 진실로 남는다.
이 영화는 충격적이다. 가해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기념하듯 재연하고, 때론 뮤지컬처럼, 때론 누아르처럼 자신의 학살을 "연기"한다. 그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 연기는 점차 기억을 복원하고, 감정을 자극하고, 무너짐을 유도한다.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처음엔 “나는 그때 1,000명쯤 죽였지. 나쁘지 않았어.”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고문하는 장면을 다시 연기하면서 결국 토하고, 침묵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들은 두려워했을까?” “내가 진짜 괴물이었을까?”
이 영화는 가해자를 통해 감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가해자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점에서 복잡하고 고통스럽다.
감정의 윤리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두 작품 모두‘카메라는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가?’를 묻는다.《아이히만 쇼》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전 세계의 분노와 공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이 고통을 ‘소비하는 감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도 안고 있었다.《더 액트 오브 킬링》은 반대로 가해자의 감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의 죄책감조차 연출의 산물인지, 진짜 각성인지 분간이 어렵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 모호함을 유지한다. 왜냐면 그것이야 말로진짜 ‘보는 자의 감정’을 흔드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바라보는 감정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아이히만 쇼》를 보면, 아이히만은 냉정하고 말이 없으며, 오히려 자기감정조차 없는 듯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는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으며,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를 지켜보는 관객의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혐오, 분노, 그러나 동시에 “이토록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라는 공포가 스며든다.《더 액트 오브 킬링》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가해자들이 스스로의 악행을 즐겁게 재연한다. 하지만 그 안에 웃음이 많을수록, 관객의 감정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어두워진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인간이 어디까지 무뎌질 수 있는가에 대한 슬픔이다.
카메라는 감정을 보여주는가, 만들어내는가?
《아이히만 쇼》 속 제작진은 고민한다.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재판을 방송하는 것이 맞는가? 그들은 결론 내린다. “보여줘야, 세상이 움직인다.”그래서 선택한 것은 정면 클로즈업, 말하지 않는 아이히만의 얼굴,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끝난 뒤의 침묵. 이 카메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꺼내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반면 《더 액트 오브 킬링》은 훨씬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연기된 감정도 진짜일 수 있는가?” 가해자들은 처음엔 ‘연기’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죄를 재현한다. 하지만 재연이 거듭 될수록 그 안에서 감정이 솟구치고, 결국 주인공 안와르는 실제로 죄책감에 몸을 떨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감정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실은 감정을 흔들고, 감정은 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두 작품은 모두 실존했던 학살의 주범 또는 실행자를 카메라 앞에 세운다. 하지만 그 의도와 결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영화《아이히만 쇼》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중계한 실제 방송 제작기를 그린 극영화다. 전 세계에 350시간이 넘는 재판 영상이 송출되었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고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반면 영화 《더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가해자였던 자들을 다큐멘터리 감독이 직접 찾아가,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을 ‘극영화처럼 연기’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콘셉트다. 가해자들은 처음엔 즐거워하며 “우리가 영웅이었지”라고 말하다가, 결국은 카메라 앞에서 무너진다.《아이히만 쇼》는"사실을 알고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진실을 보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더 액트 오브 킬링》은 그 반대다."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감정을 부정하며 살아갈 때, 그 감정을 스스로 연기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두 영화 모두,‘진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얼마나 감정을 좌우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서 그런가?”
감정의 마지막 문장
《아이히만 쇼》는 우리가 감정을 회피하지 않도록,《더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조차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들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말하고 있다. “기억은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새겨진다.”그리고 감정이 새겨진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감정의 결론
“감정은 기록될 수 있을까? 아니면,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누군가를 기록해야 하는 걸까?”
《아이히만 쇼》는 피해자의 감정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더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의 감정을 마침내 자각하게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둘 다 고통스럽고, 불편하며, 하지만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감정의 기록이다.
명대사
《아이히만 쇼 (The Eichmann Show, 2015)》
“People don’t believe what they can’t see.”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감정도, 고통도, 범죄도카 메라 앞에 놓였을 때에야 ‘실재한다’고 여겨지는 시대의 진실을 보여주는 문장이죠. 피해자의 감정을 ‘보여줘야만’ 믿는 세계, 그것이 미디어의 현실입니다.
《더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Did the people I tortured feel the same way I do now?” “내가 고문했던 사람들도, 지금의 나처럼 느꼈을까?”
가해자인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연기한 고문 장면을 보고혼잣말로 내뱉는 대사입니다. 죄책감이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형태로 스며드는 순간이자, 그가 처음으로 ‘피해자’의 감정을 상상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OST 추천
두 영화 모두 다큐멘터리/재연 드라마 성격이 강해음악이 과하게 감정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장감, 불편함, 차가운 정적이 감정을 강화합니다.
《아이히만 쇼》 OST – 작곡: Martin Phipps
“Opening Titles”
차분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스트링, 재판의 긴장감을 고조
“The Booth”
아이히만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 감정 없이 서늘한 사운드
“Silence in Court”
피해자의 증언에 대한 침묵, 감정의 잔상이 남는 테마
《더 액트 오브 킬링》 OST – 작곡: Elin Øyen Vister 외
“Medan Night”
학살자들의 일상에 흐르는 이상한 평온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표현
“Re-enactment”
재연 장면의 불쾌한 몰입감을 전달하는 전자음 사운드
“Final Scene”
안와르 콩고가 토하고, 침묵하는 엔딩에서 흐르는 침묵의 음악
외부링크
감정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이야기
[영화] - 영화 피아니스트 vs 인생은 아름다워 –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원더》와 《월 플라워》 -상처를 품은 아이들 (0) | 2025.04.17 |
---|---|
영화 《매트릭스》 vs 《트루먼 쇼》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 (0) | 2025.04.14 |
영화 《4등》 vs 《한공주》-말하지 못한 감정이 상처가 될 때 (0) | 2025.04.12 |
영화 《포스 마쥬어》 vs 《결혼 이야기》 -무너진 사랑 (0) | 2025.04.12 |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 vs 《보이 이레이즈드》 – 지워진 감정, 금지된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0) | 202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