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 《더 웨일》 vs 《엘리펀트 맨》 -존재의 고백

by aurora33님의 블로그 2025. 4. 12.
반응형

 

주인공이 '당장 죽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들으려고요' 라고 말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 영화[더 웨일] 공식 스틸컷

 

영화《더 웨일》과 《엘리펀트 맨》은 존재의 고백을 통해, 외로움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존재 자체로 고백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어떤 감정일까요? 

영화 더 웨일과 엘리펀트 맨, 존재의 고백 – 고립 속에서 감정

찰리는 극심한 비만으로 인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킨 채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몸이 아닌 내면의 무너짐에 집중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딸에게조차 미안함을 말로밖에 전할 수 없는 그에게 방 안의 벽은 세상의 편견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자책의 성벽이다.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이 말은 찰리가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자, 그가 아직 인간으로서 존엄을 붙잡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였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면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 영화[엘리펀트 맨] 공식 스틸컷

시선에 갇힌 고통 

존 메릭은 희귀 질환으로 기형적인 얼굴을 가졌고, 19세기 런던에서 서커스의 기괴한 전시물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슬프도록 조용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품위와 정서가 살아있다. “나는 동물이 아닙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이 외침은 단순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존 메릭이 세상에 건넨 존재 선언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알았고, 문학을 이해했으며,
누군가의 손길에 감동할 줄 알았던,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영화는 메릭의 고통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얼마나 무심하게 '다름'을 배척하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해받고 싶은 두 사람 – 그러나 여전히 먼 거리

《더 웨일》의 찰리와 《엘리펀트 맨》의 존은 몸의 무게나 얼굴의 형태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 한다. 찰리는 딸을 통해 삶의 용서를 얻으려 했고,
존은 의사 트리브스를 통해 사람답게 존재하고자 했다. 그들은 누군가의 눈빛, 말, 손길 하나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너무나 쉽게 그들의 존엄을 소비하거나 연민한다.《더 웨일》은 가족을 통한 용서라는 희망을,
《엘리펀트 맨》은 공감과 예술이 주는 위로를 말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여전히 슬픔 속에 묻혀 있다.

감정의 결론

이 두 영화는 육체의 형태로 인해 사회에서 '다르게 보이는' 한 인간이, 그 안에 깃든 슬픔, 자책, 존엄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영화 《더 웨일》은 극도의 체중으로 방 안에 갇혀버린 한 남자의 참회록이고, 영화 《엘리펀트 맨》은 기형으로 인해 ‘구경거리’가 된 남자의 인간 선언이다. 두 영화는 묻는다. 사람을 사람이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람은 이해받기 전까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찰리와 존은 모두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몸은 불편했지만, 감정은 누구보다 유연했고 따뜻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관객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미안함에서 오는 눈물이 된다. 그들이 남긴 건 "동정"이 아니라,**"존중받고 싶은 인간의 감정"**이었다.

감정은 몸의 형태를 넘는다 –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질문

두 영화는 모두 물리적인 몸의 형태, 즉 ‘다름’과 ‘불편함’으로 인해 세상이 인물들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더 웨일》의 찰리는 체중으로 인해 문을 나설 수도, 제대로 숨 쉴 수도 없고,《엘리펀트 맨》의 존은 얼굴 하나로 존엄은커녕, 인간으로서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눈빛과 말을 따라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단 하나다. “그들은 단지 다르게 생겼을 뿐, 감정은 나와 다르지 않다.”찰리는 숨이 가빠도 사랑하려 했고, 존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들의 외형은 다르지만, 내면은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끝내 세상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했고, 누군가의 사랑을 믿고 싶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이 두 영화는 단순히 감정적 동정을 유도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려 했는가? 누군가의 외형만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지나쳐버린 적은 없었는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에게, 그 자격을 ‘보여달라’고 강요한 건 아닐까?

《더 웨일》에서 딸 엘리가 아버지 찰리에게 쏘아붙이는 말,《엘리펀트 맨》에서 군중이 메릭을 보며 웃거나 눈물을 흘릴 때,
그 감정의 뿌리는 모두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이 두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동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마무리 감상

나는 《더 웨일》을 보고 난 후, 내 안의 무너졌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는 기분이 들었다.《엘리펀트 맨》을 보았을 땐, 누군가의 고통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본 것 같았다. 둘 다 슬픈 영화지만, 결코 불행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의 존재를 믿었다. 그래서 이 두 영화는"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가장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실을, 조용히 우리에게 남긴다.

OST 추천

《더 웨일 (The Whale, 2022)》

작곡가: 롭 시몬슨 (Rob Simonsen)

“Missionary Position” – 찰리의 고립된 삶과 딸에 대한 죄책감이 스며든 슬로 테마

“Revelation” – 영화 후반부, 감정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에서 사용된 절박하고 묵직한 사운드

“Last Essay” – 딸 엘리의 에세이와 함께 울려 퍼지는 장면의 음악. 단순한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흔든다.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피아노와 현악이 고립과 인간성에 대한 서사를 지지합니다.

《엘리펀트 맨 (The Elephant Man, 1980)》

작곡가: 존 모리스 (John Morris)

“John Merrick and Psalm” – 영화 마지막 장면, 침대 위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안식을 맞이하는 메릭의 감정을 상징하는 곡

“I Am Not an Animal” – 클래식하면서도 슬픔이 깃든 주제 선율이 돋보이는 트랙

“The Elephant Man Theme” – 인간 내면의 고통과 연민을 품은 현악 위주의 메인 테마

명대사

《더 웨일》

“I need to know that I have done one thing right with my life.”
“내 인생에서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한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찰리의 이 대사는, 죄책감과 자책 속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준 기억만은 믿고 싶었던 인간의 고백입니다.

《엘리펀트 맨》

“I am not an animal! I am a human being!”
“나는 동물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이 절규는 단지 외모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그 어떤 명대사보다 강력한 울림을 남기죠.

외부링크 

더 웨일

IMDb – The Whale

엘리펀트 맨

MDb – The Elephant Man

 

감정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이야기

[영화] - 영화 미 비포 유 vs 인사이드 아임 댄싱- 삶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 그 감정은 누구의 몫일까?

 

반응형